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풍도 風濤(ふうとう)
노력하는 사람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은 불만을 이야기 한다 (努力する人は希望を語り、怠ける人は不満を語る) 뭐라도 좋으니 몰두하는 것은 정말 인간의 살아가는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何でもいいから夢中になるのが、どうも、人間の生き方の中で一番いいようだ,)
술을 좋아하는 일본작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탈락하면 지인들에게 소탈하게 술을 대접하면서 “이 술이 노벨상이오”라면서 잔을 비웠다고 한다. 그는 항상 뭔가에 몰두하며 작품을 썼다. 다케다 신겐을 그린 TV 드라마 風林火山( ふうりんかざん)도 그의 원작을 토대로 했는데 일본사뿐만 아니라 중국과 중국사에도 푹 빠져 11세기 중국을 재구성해 막고굴(莫高窟)에 숨겨진 불교 보물 발굴 과정을 그린 ‘돈황’(敦煌),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로프노르 호수의 작은 오아시스 왕국 누란의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다룬 누란(樓蘭), 8세기 나라(奈良)시대 승려 4명이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불교경전과 예술품들을 일본에 반입한 일을 묘사한 덴표의 용마루(天平の甍(いらか)같은 불후의 명작을 써냈다. 이들 작품은 고고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소재들이라 놀랍기만 하다. 그는 한국의 고려시대를 다룬 풍도 (風濤ふうとう)도 남겨 국내에도 ‘검푸른 해협’이란 이름으로 번역돼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이노우에 야스시는 취재차 1963년에 한국의 강화도, 부산, 울산, 경주, 마산 등지를 세 차례나 답사하고 고려사를 탐독했다고 한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작품전개 방식은 아주 특이하다. 여몽 연합군의 고려 측 장군으로 쿠빌라이로부터 전선 건조를 지시 받고 일본정벌에 나서는 고려의 명장 김방경(金方慶きんほうけい)을 비롯해 고려왕 원종(元宗げんそう), 충렬(忠烈ちゅうれつ), 고려를 괴롭힌 몽골의 쿠빌라이, 고려인이면서 원나라 편에서 출세해 일본원정에서 몽골-한족군의 대장이 된 洪茶丘(こうさきゅう)등을 등장인물로 내세우면서 정작 일본인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일본인이지만 역사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다. . 이노우에 야스시는 작품 집필을 위해 고려왕이 피신했던 강화도와 여몽연합군 전단이 닻을 올렸던 경상남도 마산의 합포항 등을 심층 취재했고 몽골을 ‘元寇’로 기술했다. 고려가 비록 몽골과 연합해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이는 강압에 의한 것이라 고려가 1차적 피해자였으며 일본보다는 고려의 국난이라는 시각을 밝힌 바 있다. 또 일본정벌 실패의 원인으로 일반적으로는 가미카제 태풍이 거론되지만 그는 몽골군이 수군을 갖고 있지 않아 해전 경험이 전무 한데다 고려에서 건조된 선박이 튼튼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라고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풍도(風濤), 돈황(敦煌), 누란(樓蘭)같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작품은 소설이지만 역사의 촘촘한 팩트에다 픽션을 잘 녹여냈으며 편협한 민족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역사소설은 철저한 고증이 있어야만 역사소설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뇌내망상일 뿐이다. 소설을 쓴다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일부 국내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